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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08 [creative]위장전술 (5)


난 평범한 20대의 아.가.씨(강조중) 이다.

물론 중고딩 녀석들에게 아줌마라고 불리울만한 나이지만,
빌어먹을 사회라는 곳에서 뒹굴고 있는 내가 그런 어린녀석들에게 뭐라고 불리울지 신경써야 할만큼 순수함을 지니고 있을 만한 나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A시의 B구 C동의 한 원룸촌이다.
버젓이 직장에 다니고 있고, 월급도 밀려본 적이 없는 그런 안정적인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오피스텔이라던가 작은 평수의 아파트는 이 좁은 나라에서, 그리고 나라는 인간에게는 사치 그 이상이다.
난 내 분수를 잘 알기에 10평 남짓되는 원룸에 기거 하고 있다.

이곳엔 혼자사는 사람들을 위한 모든것이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곳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무색할 정도로-아파트 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는다-서로에게 관심이라고는 발톱에 낀 때 만큼도 있지 않은 무관심과 의기주의적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옆집 사람이 살해당하건 죽어서 썩어 냄새가 나던 이곳에선 그저 반복되는 일상속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모여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까. 이 곳에서는 종종 미쳐버려서 실려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혼자라는건 어쩔수 없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동반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상상으로 그 외로움을 달래왔고,
그 상상이라는것이 한도를 넘어서 사람 하나를 망쳐버리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였다. 헌데, 나에게도 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혼직장여성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난 끼니때마다 챙겨먹지 않는 편이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밥을 한다는 그 행위에서 발생하는 기타 부산물들-음식물쓰레기나 설겆이꺼리 등등-이 나를 주방에서 멀어지게 한다.
더군다나 아무리 혼자라는 것이 익숙해졌다고 해도 황량한 식탁에서 외롭게 밥을 먹는다는건 정말 진저리 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큰맘먹고 장만했던 20만원짜리 그릴이 달린 가스렌지는 오늘도 처량하게 라면물이나 끓여대고 있다.
조용한 집이 싫어서 조금 오버해서 틀어놓은 TV도 오늘따라 짜증이 나고,
몇일째 라면이나 깨작 거리는 내 자신에게도 짜증이 나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원룸촌과 시내는 가까운 편이라 5분에서 10분 정도를 걸으면 번화가가 나온다.
난 늦은시간에 무작정 그곳을 방황했다.
한시간 쯤을 걸었을까, 나도 인간인 지라 배가 고프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시내에도 나왔으니 맛있는걸 먹어볼까 하고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페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갔다-페스트푸드가 뭐가 맛있냐고 하겠지만, 난 인스턴트 인간이라서 페스트푸드에 환장하는, 그런 종류였던 것이다-.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던 나에게 다시한번 눈살을 찌푸릴 광경이 들어왔다.
젊고 늙고를 떠나서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커플들이 삼삼오오 하트를 만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맛있게 먹겠다던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고, 무작정 카운터로 돌진한 나는 이것저것 몽땅 시키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가 많이도 산다고 생각했던지, 주문을 받던 직원은 통상적으로 물어야 하는 질문인
"드시고 가실거에요? 포장해 가실 거에요?" 를 생략한 체
"포장해 가실꺼죠?" 라고 물어온다.
'아.. 내가 많이 시키긴 시켰나보군..'이라고 후회하면서 "네 포장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그곳을 나왔다.
생각보다 묵직한 음식꾸러미를 손에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쳇, 혼자선 이걸 다 못먹는다고 생각했다는 거겠지'
'그럼 그 직원은 내가 혼자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꺼야. 아마 퇴근길에 가족들과 맛있게 먹으려고 사간다고 생각했을꺼야.'
'난 혼자 살지만 다른사람들에게 보이기엔 어떻게 보일까?'
'내가 행동하는 것에 따라 다른사람들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수 있을꺼야'
'그래 혼자사는 여자라고 생각되지 않게 행동하자. 그러면 나도 외롭지 않을수 있을꺼야'

그 후로 장을 봐도 항상 적정량이 아닌 2인분의 음식물을 사고, 옷을 사도 내것 뿐만이 아닌 있지도 않은 '같이사는사람'의 옷을 사고, 현관엔 항상 2사람의 신발이 있고, 욕실엔 칫솔이 두개, 식기들도 항상 2인분씩, 심지어는 음식을 시켜먹어도 2인분을 시키게 되었다.
보다 확실한 위장을 위해 생일이라고 케익도 커다란걸 사 가기도 하고,
회사에서 조차 오늘 룸메이트와 만나기로 했다면서 일찍 퇴근하기도 하고,
가끔 걸려오는 친구들의 전화를 룸메이트의 전화로 위장해보기도 하고,
같이 여행간다면서 월차를 내기도 하고.....
증상은 더더욱 심해져 집에서도 혼잣말을 하게 되어 정말 룸메이트와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적도 그 빈도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의 모든 생활은 '나' 혼자가 아닌 또 다른 '동거인'과의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마치 주부같은-그렇다고 그 '동거인'을 남자로 설정해 놓은것은 아니다-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자주 들락날락 거려 단골이 되어버린 슈퍼의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가씨는 맨날 힘들게 장봐가는데 그 룸메이트는 왜 코빼기도 안보여~ 같이 와서 먹거리도 같이 사고 짐도 나눠들고 해야지~"
나는 한편으로는 내 작전이 역시 성공했구나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둘러댈 말이 적당치 않았다.
"아~ 그건 말이죠, 제 룸메는 저녁에 일을 나가고 전 아침에 일을 나가서, 그러니까 서로 생활하는 시간대가 틀려서 그래요. 서로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고 하지만 서로의 일이 분담돼 있어서 전 장봐오는 일을 맡은 거고 제 룸메는 집안일을 맡았죠"
진땀이 흘렀다. 아무래도 너무 횡설수설한것 같았다.
슈퍼 아주머니는 갸우뚱 하는듯 했으니 곧 이해한 듯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난 또 아가씨가 여느 다른 사람들 처럼 환상이라도 보는게 아닐까 해서~ 매일 말만 들었지 한번도 본적이 있어야지~ 여기 오는 손님들한테 물어봐도 아가씨 룸메는 없었고... 그래서 물어봤어~ 너무 신경쓰지 말어~"
그냥 씁쓸하게 웃어주고 슈퍼를 나섰다.
나도 결국 그렇게 되버린단 말인가, 아냐 난 단지 혼자산다라고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러는 것일 뿐, 절대 이 장난에 집착한다던가 하는 건 없는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아마 눈치 챘겠지.
그래 이쯤에서 그만 두는게 좋겠다.'

혼란스러운 머리를 식힐겸 동네 한바퀴를 어슬렁 거리면서 미적미적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분명히 잠겨 있어야 하는 문은 열려 있고, 캄캄해야 할 집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난 덜컹 마음이 내려앉았다. 설마 도둑이 들었나? 아니면 정말 환상의 그 동거인이 드디어 실체로 나타난 것일까, 하는 이런저런 생각에 허겁지겁 들어가보니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엄마'였다.

"엄마 연락도 없이 어떻게 오셨어요?"
하지만 엄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왠지 폭풍전야같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 후, 엄마는 말씀을 시작하셨다.
"너... 분명히 혼자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니? 그런데 집안꼴이 이게 뭐니? 왜 칫솔이 두개에 저 옷들은 뭐니? 엄마 몰래 남자라도 끌여들인거야 뭐야?"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내가 설명할께요, 그건..."
"아니긴 뭐가 아니야! 누구야! 대체 어떤놈이야! 여자가 외간남자랑 같이 산다고? 결혼한것도 아니고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시집을 어떻게 가려고 그래 이 X아!!!!"
난 여기서 미쳐버리고 말았다.
"아니라니까!!!! 내 룸메이트는 여자에요!!! 그리고 지금 일 나가고 없는거라구요! 대체 날 뭘로보고 그러는거에요! 아침이면 들어올꺼니가 정 못미더우면 기다려 보세요!!!"
그렇게 소리를 빽 질러버리고 난 엄마에게 등을 휙 돌리고는 그대로 잠자리에 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당연하게도 그 룸메이트는 나타나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신경전은 계속 되었다.
그 신경전 속에서 난 더이상 참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폭발해버렸다.

물론 난 그 상상속의 룸메이트가 안나타날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열띤 엄마의 책망속에서 내 신경선은 끊어져버렸고, 제정신을 차렸을때는 눈 앞이 온통 빨갛게 물들어서 마치 불이 나는듯한 착각까지 일으켰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는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내 평생을 돌봐주었던 어머니였건만 저렇게 고깃덩어리가 되어있으니 지저분하고 냄새만 날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역시 난 인스턴트 인간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주섬주섬 지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토막난 엄마는 되도록 잘게 잘라서 조금씩 조금씩 버리고, 태우고, 묻는 식으로 그렇게 처리했다.

이곳엔 혼자사는 사람들을 위한 모든것이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곳은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무색할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이라고는 발톱에 낀 때 만큼도 있지 않은 무관심과 의기주의적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옆집 사람이 살해당하건 죽어서 썩어 냄새가 나던 이곳에선 그저 반복되는 일상속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모여있을 뿐이다.

그리고 난 변함없이 2인분의 음식을 시키고, 2인분의 장을 보고, 있지도 않은 동거인의 옷을 사고, 그리고 현관으로 들어선다.
"다녀왔어,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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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2002년 7월 17일 (2007년 3월 8일 현재 전혀 수정하지 않았음)
곰군의 홈피에 올려놨던 글을 가져옴.
그때는 이런글도 썼었구나.. 라는 감상.
요즘엔 전혀 안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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